시계 광고나 사양표에는 거의 빠짐없이 “무브먼트”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가격대가 비슷해도 안에 든 무브먼트의 종류와 완성도에 따라 시계에 대한 평가가 크게 갈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케이스를 열어 볼 일이 없으니, 그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떠올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 글에서는 기계식 무브먼트를 다섯 부분으로 나눠 각각 어떤 일을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무브먼트의 뼈대: 메인 플레이트와 브릿지
무브먼트의 부품들은 두 종류의 판 사이에 자리 잡습니다. 바닥에 깔리는 둥근 판을 “메인 플레이트”, 그 위를 덮으며 부품의 축을 붙잡아 주는 여러 조각의 판을 “브릿지”라고 합니다. 톱니바퀴의 축은 아래쪽 플레이트와 위쪽 브릿지 사이에 끼워져 돌아가는데, 축이 닿는 자리마다 마찰을 줄이는 인공 루비(주얼)가 박혀 있습니다.
뒷면이 투명한 시계를 들여다보면 보이는 것이 대부분 이 브릿지입니다. 고급 무브먼트는 눈에 잘 띄지 않는 브릿지 표면까지 물결무늬나 원형 무늬로 다듬어 놓는데, 이런 작업을 “피니싱(마감)”이라고 부릅니다.
무브먼트를 이루는 다섯 부분
기계식 무브먼트는 역할에 따라 다섯 부분으로 나눠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 부분 | 주요 부품 | 하는 일 |
|---|---|---|
| ① 동력 장치 | 배럴, 메인스프링(태엽) | 힘을 저장하고 내보낸다 |
| ② 전달 장치 | 기어 트레인(톱니바퀴 묶음) | 힘을 조절 장치까지 옮긴다 |
| ③ 조절 장치 | 이스케이프 휠, 팔렛 포크 | 힘을 한 박자씩 끊어서 내보낸다 |
| ④ 진동 장치 | 밸런스 휠, 헤어스프링 | 일정한 박자를 만든다 |
| ⑤ 표시 장치 | 다이얼 트레인, 바늘 | 시·분·초를 보여 준다 |
① 동력 장치: 배럴과 메인스프링
“배럴”은 작은 북처럼 생긴 원통이고, 그 안에 길고 얇은 태엽인 “메인스프링”이 돌돌 감겨 있습니다. 태엽을 감으면 힘이 저장되고, 풀리면서 배럴 바깥쪽의 톱니를 돌립니다. 배럴을 두 개 이상 넣어 더 오래 가게 만든 무브먼트도 있습니다.
② 전달 장치: 기어 트레인
배럴의 힘은 크기가 다른 톱니바퀴 여러 개를 차례로 거칩니다. 이 톱니바퀴 묶음을 “기어 트레인”이라고 합니다. 톱니 수의 비율이 정밀하게 계산되어 있어서, 그중 한 바퀴는 정확히 1시간에 한 바퀴, 또 다른 바퀴는 1분에 한 바퀴를 돕니다. 분침과 초침은 이 바퀴들의 축에 연결됩니다.
③ 조절 장치: 이스케이프먼트
태엽의 힘을 그대로 두면 톱니바퀴들은 몇 초 만에 모두 풀려 버립니다. 이를 막는 것이 “이스케이프먼트”입니다. 끝이 갈고리처럼 생긴 “이스케이프 휠”과, 닻처럼 생긴 “팔렛 포크”가 번갈아 걸렸다 풀렸다 하면서 힘을 아주 작은 단위로 끊어 내보냅니다. 시계에서 들리는 “째깍” 소리가 바로 이 부품들이 부딪히는 소리입니다.
④ 진동 장치: 밸런스 휠과 헤어스프링
이스케이프먼트가 언제 걸리고 풀릴지를 정해 주는 것이 “밸런스 휠”입니다. 머리카락보다 가는 “헤어스프링”에 연결되어 있어서, 한쪽으로 돌면 스프링이 당겨 다시 반대로 되돌리는 움직임을 일정한 속도로 반복합니다. 이 왕복 운동의 빠르기가 시계의 정확도를 결정합니다. 그래서 흔히 밸런스 휠과 헤어스프링을 무브먼트의 “심장”이라고 부릅니다.
⑤ 표시 장치: 바늘까지 이어지는 톱니바퀴
시침은 분침보다 12배 느리게 돌아야 합니다. 이 속도 차이를 만드는 작은 톱니바퀴 묶음이 다이얼 바로 아래에 숨어 있고, 여기에 바늘이 꽂힙니다. 날짜나 요일을 보여 주는 장치도 대부분 이 층에 더해집니다.
쿼츠 무브먼트는 어떻게 다를까
쿼츠 무브먼트는 구성 자체가 다릅니다. 태엽 대신 배터리가 전기를 공급하고, 밸런스 휠 대신 소리굽쇠 모양의 작은 수정 진동자가 박자를 만듭니다. 전자 회로가 수정의 진동을 세어 1초마다 신호를 보내면, 스텝 모터가 그 신호를 받아 톱니바퀴를 한 칸씩 돌립니다. 바늘을 돌리는 마지막 톱니바퀴 부분만 기계식과 비슷합니다. 부품 수가 훨씬 적어서 기계식보다 작고 얇게 만들기 쉽습니다.
무브먼트 크기를 부르는 단위 “리뉴”
무브먼트의 지름은 밀리미터 외에 “리뉴(ligne)”라는 옛 프랑스 단위로도 표기합니다. 1리뉴는 약 2.256mm입니다. 사양표에 “11½리뉴”라고 적혀 있다면 지름이 약 26mm인 무브먼트라는 뜻입니다. 같은 무브먼트가 여러 크기의 케이스에 들어가기도 하므로, 무브먼트 지름과 케이스 지름은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자사 무브먼트와 범용 무브먼트
사양표에서 자주 보이는 “자사 무브먼트(인하우스)”는 시계 브랜드가 직접 설계하고 만든 무브먼트를 말합니다. 반대로 무브먼트 전문 제조사가 만든 제품을 사서 넣는 경우를 “범용 무브먼트”라고 부릅니다.
- 자사 무브먼트: 브랜드의 기술력을 보여 주고 디자인과 기능을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습니다. 개발비가 많이 들어 시계 가격이 높아지는 편이고, 수리는 대부분 해당 브랜드 서비스 센터를 거쳐야 합니다.
- 범용 무브먼트: 오랜 기간 수많은 시계에 쓰이며 검증된 구조가 많습니다. 부품을 구하기 쉬워 수리하기 편한 경우가 많습니다. 브랜드가 받아 온 무브먼트를 직접 조정하고 다듬어 성능을 높이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 무조건 더 좋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자사 무브먼트라도 정확도나 내구성이 범용 무브먼트보다 반드시 뛰어난 것은 아니므로, “자사”라는 말만 보고 판단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사양표에서 무브먼트 읽는 법
사양표의 무브먼트 항목에서는 다음 순서로 확인하면 됩니다.
- 방식: 수동, 오토매틱, 쿼츠 중 무엇인가
- 칼리버: 무브먼트의 이름이나 번호. 자사인지 범용인지 함께 적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 진동수: 28,800vph(4Hz)처럼 밸런스 휠의 빠르기
- 파워리저브: 태엽을 가득 감았을 때 가는 시간
- 인증: 크로노미터처럼 정확도 인증을 받았는지 여부
무브먼트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지만 시계의 성격을 거의 정합니다. 다음에 시계를 볼 때는 디자인과 함께 사양표의 무브먼트 항목을 위의 다섯 가지 순서로 읽어 보세요. 같은 가격대 시계들의 차이가 훨씬 또렷하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