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사양표에서 사람들은 지름부터 봅니다. 그런데 막상 하루 종일 차 보면 불편함의 원인은 지름보다 두께, 무게, 그리고 손목에 닿는 뒷면의 모양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 글에서는 지름 말고 착용감을 좌우하는 요소들을 하나씩 짚어 보겠습니다.
두께: 소매와 손목 사이의 공간
시계 두께는 케이스 뒷면 바닥에서 크리스털 꼭대기까지의 높이입니다. 두께는 소매 안에 시계가 들어가는지, 책상에 팔을 올렸을 때 시계가 부딪히는지를 결정합니다.
| 두께 구간 | 느낌 | 흔한 시계 종류 |
|---|---|---|
| 8mm 이하 | 셔츠 소매 안으로 쉽게 들어감 | 얇은 드레스 워치, 수동 와인딩 |
| 9~11mm | 대부분의 옷에 무난함 | 일상용 오토매틱 |
| 12~14mm | 존재감이 있고 소매에 걸리기 시작함 | 다이버 워치, 크로노그래프 |
| 15mm 이상 | 확실히 두툼하고 무거운 인상 | 방수 성능이 매우 높은 시계, 복잡한 기능 시계 |
두께가 늘어나는 이유는 대개 기능 때문입니다. 자동 감기 로터가 들어가면 그만큼 높아지고, 크로노그래프처럼 부품이 많은 무브먼트도 두꺼워집니다. 방수 성능을 높이려면 크리스털과 뒷면을 두껍게 만들어야 해서 다이버 워치도 두꺼운 편입니다.
두께를 만드는 세 부분
같은 무브먼트를 써도 케이스 설계에 따라 두께가 달라집니다. 두께는 크게 세 부분이 더해져 정해집니다.
- 크리스털 높이: 평평한 크리스털보다 볼록하게 솟은 돔형 크리스털이 1~2mm 더 높습니다. 대신 옆에서 볼 때 부드러운 곡선이 생깁니다.
- 베젤 높이: 회전 베젤처럼 두꺼운 베젤은 크리스털을 보호하는 대신 전체 높이를 올립니다.
- 뒷면 두께: 방수 성능이 높을수록 뒷면을 두껍게 만들고, 투명한 뒷면은 유리를 끼울 자리 때문에 더 두꺼워지기 쉽습니다.
무게와 무게 중심
무게는 소재와 크기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같은 모양이라도 티타늄 시계는 가볍고, 금 시계는 묵직합니다. 금속 브레이슬릿은 가죽 스트랩보다 훨씬 무거워서 시계 전체 무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도 합니다. 소재가 무게를 얼마나 바꾸는지는 그랜드 세이코 SBGA211이 잘 보여 줍니다. 지름 41mm, 두께 12.5mm로 작지 않은 시계인데, 케이스와 브레이슬릿을 모두 티타늄으로 만들어 브레이슬릿까지 합친 무게가 100g입니다. 소재별 차이는 소재 비교 글에서 더 자세히 다룹니다.
무게만큼 중요한 것이 무게 중심입니다. 무거운 헤드(시계 본체)가 가벼운 스트랩 위에 높이 얹혀 있으면, 손목을 움직일 때마다 시계가 손목 바깥쪽으로 쏠리고 돌아갑니다. 반대로 헤드가 낮고 브레이슬릿이 무게를 나눠 받으면 같은 무게라도 덜 무겁게 느껴집니다. 두꺼운 시계를 가죽 스트랩에 달았을 때 자꾸 기우는 느낌이 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양표에는 무게가 적혀 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무게가 궁금하다면 매장에서 직원에게 물어보거나, 같은 모델의 스트랩 버전과 브레이슬릿 버전을 번갈아 들어 비교해 보세요.
뒷면과 러그의 곡선
손목에 직접 닿는 케이스 뒷면의 모양도 착용감을 좌우합니다.
- 평평한 뒷면: 손목 윗면과 넓게 닿아 안정감이 있지만, 손목이 가는 사람은 가장자리가 뜰 수 있습니다.
- 볼록한 뒷면: 손목 굴곡에 파묻히듯 안착해 실제 두께보다 얇게 느껴집니다.
- 투명한 뒷면: 무브먼트를 볼 수 있는 대신 유리를 끼우는 구조 때문에 조금 두꺼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러그가 아래로 휘어져 있으면 스트랩이 손목을 따라 자연스럽게 감기고, 러그가 곧게 뻗어 있으면 스트랩이 시작되는 지점에 틈이 생겨 시계가 떠 있는 느낌이 납니다.
용두 위치와 튀어나온 부분
용두는 보통 3시 방향에 있습니다. 그런데 손목을 손등 쪽으로 젖히면 이 용두가 손등을 누르기 쉽습니다. 용두가 크거나, 용두를 보호하는 가드가 붙어 있으면 더 그렇습니다. 그래서 일부 시계는 용두를 4시 방향으로 옮기거나, 왼손잡이용으로 9시 방향에 두기도 합니다.
크로노그래프의 버튼, 회전 베젤의 높이도 옷에 걸리는 정도에 영향을 줍니다. 베젤이 크리스털보다 높이 솟아 있으면 크리스털을 보호하는 장점이 있지만 소매에는 더 잘 걸립니다.
같은 지름, 다른 착용감의 예
지름이 39mm로 같은 두 실제 모델을 비교해 보면 사양표의 두께 한 줄이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지 드러납니다.
| 항목 | 예거 르쿨트르 마스터 울트라 씬 문 | 튜더 블랙 베이 58 |
|---|---|---|
| 지름 | 39mm | 39mm |
| 두께 | 9.9mm | 11.9mm |
| 무브먼트 | 오토매틱 칼리버 925 (문페이즈) | 오토매틱 MT5402 |
| 성격 | 드레스 워치 | 다이버 워치 (200m 방수) |
| 느낌 | 소매 안으로 쏙 들어가는 얇은 시계 | 존재감 있고 튼튼한 시계 |
두께 차이는 2mm뿐이지만, 하나는 정장 소매 안에 숨는 시계이고 다른 하나는 소매 끝에 걸리는 시계가 됩니다. 문페이즈라는 부가 기능을 넣고도 더 얇은 쪽이 드레스 워치라는 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반대로 블랙 베이 58의 두께는 200m 방수를 위한 크리스털과 뒷면에서 나옵니다.
얇은 시계에도 대가가 있다
얇은 시계는 착용감이 좋지만 몇 가지를 양보합니다. 케이스와 크리스털이 얇은 만큼 충격과 수압에 약해 방수 성능이 낮은 경우가 많습니다. 무브먼트를 얇게 만들려면 부품이 작고 섬세해져서, 강한 충격에 더 조심해야 합니다. 또 태엽을 감을 공간이 작아 파워리저브가 짧은 편입니다. 얇은 시계를 고른다면 이런 특징을 미리 알고, 운동이나 물놀이용 시계는 따로 두는 것이 좋습니다.
매장에서 착용감 확인하는 법
- 긴소매 셔츠를 입고 가기: 시계가 소매 안에 자연스럽게 들어가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책상에 팔 올려 보기: 키보드를 치는 자세에서 시계 뒷면이 손목을 누르는지, 버클이 책상에 닿는지 봅니다.
- 팔을 흔들어 보기: 시계가 손목 바깥쪽으로 돌아가거나 기우는지 확인합니다.
- 10분 이상 차 보기: 무게로 인한 피로는 몇 분 뒤에야 느껴집니다.
손목이 가는 사람이 두꺼운 시계를 고를 때
손목이 가는데 두꺼운 스포츠 워치가 마음에 든다면, 뒷면이 볼록하고 러그가 아래로 휜 모델을 찾으면 두께가 한결 덜 부담스럽습니다. 브레이슬릿 대신 가벼운 러버나 직물 스트랩을 달면 전체 무게가 줄어 손목 부담이 덜합니다. 다만 앞에서 설명했듯 헤드가 무거운 시계는 스트랩이 가벼울수록 손목 바깥쪽으로 기울기 쉬우므로, 스트랩을 조금 더 알맞게 조여 차는 것이 좋습니다.
가로·세로 크기를 손목에 맞추는 방법은 손목 사이즈 글에서, 얇은 정장용 시계와 두툼한 활동용 시계의 전체적인 차이는 드레스 워치와 스포츠 워치 글에서 이어서 볼 수 있습니다. 같은 39mm라도 9.9mm와 11.9mm는 전혀 다른 시계라는 것, 이 한 가지만 기억해 두어도 사양표가 다르게 읽힙니다.